복음/사순절 묵상

사순절 십자가의 길 1일

즐거운길 2021. 2. 24. 12:53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 장 1 절

우리는 사순절, 40 일 기간 동안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특히 요한복음 13-19 장까지의 말씀을 고난 주간 동안 보면 아주 큰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고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 소중한 영적 메시지를 우리에게 줍니다.

 

 

 

[고난은 사랑이다]

 

왜 우리가 고난을 이해해야 합니까? 그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알 때 영원한 생명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말미암은 생명을 영생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고 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모두 중요하지만, 그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영원한 생명, 그것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깊은 세계를 묵상하면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위를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3D 직종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습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무익한 고난을 자처할 필요는 없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 119:67, 71]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71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롬 5:3-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 3:10-11]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골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딤후 1:8]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2: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벧전 2:20-21]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고난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질 때 교회가 살아난다]

 

말씀을 통해 고난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라”고 했던 성경의 가르침과 너무나 거리가 멀어진 것 같습니다. 신앙인들도 고난 없이 신앙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라고 생각하고, 교회에서도 그렇게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이가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께 심판과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고난을 자처하는 것도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합니다. 이런 가르침들로 인해 교회가 천박해지고 가벼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조금의 어려움도 참고 견디지 못하는 가벼운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핏빛 사랑, 고난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진지하고 진한 사랑이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들 안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가볍고 천박한 사랑만 주고 받는 곳이 되었습니다. 고난을 가르치고, 고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게 될 때, 그리스도인들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나고 세상이 살아나는 부활의 영광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고난의 길 앞에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다]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은 요한복음 13 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고 했습니다.

 

고난 중에 가장 큰 고난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고난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기 원하고 사랑받기 원하지만 실제로 사랑하는 것만큼 어렵고 힘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법구경에서는 사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고난을 자처하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가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13 장은 최후의 만찬이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요한은 13 장에서 16 장까지 긴 고별의 설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7 장은 고별의 기도이고, 18 장부터는 본격적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3 장의 최후의
만찬에서, 주께서는 자신의 가실 길을 아시고 제자들을 불러 모은 후에 만찬을 베푸시고 권면하셨습니다. 

 

요한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13 장의 시작입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요한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장면을 깊이 묵상해보십시오.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어떤 모습으로 다른 이를 대하겠습니까? 모든 것이 끝나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참혹한 고난의 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의 자리로 출발하시는 장면입니다. 

요한은고난의 자리를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쓰라린 고통의 길을 출발하는 심각하고 거룩한
고별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도 제자들을 마지막 순간까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다른 이를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어려움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더 타자와의 관계가 멀어집니다. 자신의 사정에 갇히기 때문입니다.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힙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죽음을 앞둔 참혹한 고난의 길을 가기 전에도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누가 크냐]

 

[요한복음 13 장]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마태복음 20 장]과 [누가복음 22 장]을 보아야 합니다. 

이 두 장에서는 서로 섬김을 받으려 하고 높아지려고 다투었던 제자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0 장 20-23 절’을 봅시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마 20:20-23)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자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귀한 자리를 원하느냐? 네가 높은 자리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네가 더욱 낮아져야 할 것이다. 섬김을 받는 자리에 오르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너희가 섬겨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로 인해서 어떤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까?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마 20:24)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를 원했던 세배대의 두 아들로 인해서 열 제자가 분히 여겼습니다. “어떻게 자리를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저렇게 높아지려고 하는가? 어떻게 저렇게 주님 앞에 교만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섬기는 자가 큰 자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5-27) 예수님은 높아지려고 하고 섬김 받으려고 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그것은 세상의 집권자들의 모습이라고 하시고, “너희는 그들과 달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servant)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slave)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예수님은 당신의 삶이 바로 섬김의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말과 행동이 같아진다는 것, 삶이 가르침이 되고 메시지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의 사상을 사랑할 수 있고, 그의 음악을 사랑할 수 있고, 그의
그림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살 수 있고, 그의 아름다운 음악처럼 살 수 있고, 그의 가르침처럼 살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대로 살아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