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사순절 묵상

사순절 십자가의 길 2일

즐거운길 2021. 2. 25. 22:01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II)

 

 

요한복음 13 장 1 절

 

우리는 사순절, 40 일 기간 동안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특히 요한복음 13-19 장까지의 말씀을 고난 주간 동안 보면 아주 큰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고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 소중한 영적 메시지를 우리에게 줍니다.

 

 

[제자들이 다투다]

 

 

누가의 기록을 봅시다.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그는 이 내용을 누가복음 22 장에서 보다 꼼꼼하게 기록해 놓았다. 마태복음 보다 더 자세하게 기록된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눅 22:24) 


누가는 제자들이 '다투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제자들 가운데서 일어났습니다.

 
[누가복음 22 장 14-15 절]을 보면, 이 다툼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7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눅 22:14-19)

최후의 유월절을 예비하는 장면,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열 제자가 두 제자를 향해서 분노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세상적 가치관의 종말]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나라를, 이전과 다른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소개하셨습니다. 이전의 세계는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가 온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두루마기가 말려지듯 옛하늘은 사라지고, 옛 땅도 모두 깨어지고 녹아집니다. 이전의 모든 것들이 근본적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가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종말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종말은 어떻게 오는 것입니까? 


가치관의 종말에서 옵니다. 세상은 섬기는 자가 ‘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섬기는 자가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높아지려면 ‘높아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높아지려면 ‘낮아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가치관과 완전히 반대되는 가치관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먼저 그 가르침대로 살아 가셨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얼마나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제자들은 주님과 오랜 시간을 함께 했지만, 온전히 종말을 체험하지 못하고, 이전의 모든 것에서 죽고 다시 살지 못하고 철저히 세상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습니까? 우리도 이전의 모든 것에 대해 종말을 체험하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세상의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여전히 변화되지 못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으로 품으시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진정한 영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내 몸과 피, 주님의 희생을 기억하라]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포도주를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마 26:26)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앞으로도 이를 행하여 포도주를 마시고 떡을 떼면서 항상 주님의 희생에 대해서 기억하라고 하신 것입니다(눅 22:19). 최후의 만찬은 제자들을 위해서 자신을 스스로 비우신 위대한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깊은 뜻을 마지막 만찬을 통해서 떡을 떼어 주시면서 까지 가르쳐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에게는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누가는 비참하게도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눅 22:24)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슬픈 이야기입니다. 매우 비극적인 장면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까지, 끝까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 사이에는 “그 중 누가 크냐”라는 다툼이 났습니다. 이것이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 안에 있었던 분위기였습니다.

 

 

 

 

[교회 안의 갈등의 문제]

 

교회 안에, 인간 안에 모든 갈등은 “내가 크다, 내가 큰 자다, 나는 높임 받아야 한다. 나는 섬김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어납니다. 스스로를 작고 낮은 자이며, 비천한 종이라고 생각하면서 섬김의 자세를 가지고 살려고 하는 곳에서는 결코 갈등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 다양한 직분의 차이가 있고 각 직분의 권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서로의 크고 작음을 결정짓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큰 자일수록 섬김받으려고 하지 아니하고 더욱 작은 자가 되어서 섬겨야 합니다. 그런 자들이 큰 자가 되고 높임 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법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

 

 

서로 누가 크냐는 문제로 인해서 싸움이 일어난 심각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저녁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쉬워 보이는 일이지만, 제자들은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아니 섬김과 낮아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자, 자신이 종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자는 결코 할 수 없는 행위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다툼이 일어난 그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삶으로 또 다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심으로, 제자들을 끝까지 섬기심으로 제자들에게 주님과 같은 진정한 사랑의 삶을 살아갈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그가 어떻게 반응한다 할지라도 영향 받지 않고 끝까지 해야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몫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우리도 삶을 통해서 드러내야 합니다. 당신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사건을 통해서 주님은 어떻게 당신께서 많은 이들로부터 높임을 받고 섬김을 받게 되셨는지, 진정으로 큰 자가 되셨는지를 밝히 보이셨습니다. 요한은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며 최후의 만찬에서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길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황토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좋은 신발을 신고 다닌다고 해야 오늘날의 샌들과 같은 것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신발에 몇 개의 줄이 있는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거의 맨발로 다녔습니다. 그래서 먼 길을 다닌다거나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다 집으로 돌아오면 발이 온갖 먼지에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집 입구에 물 항아리가 있어서 발을 씻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종이 주전자 같은 것을 이용해서 물을 떠서 발을 씻기고 수건으로 닦았습니다. 특히 종은 만찬의 잔치에 손님이 올 경우에 그 발을 닦아주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 친히 오신 것이었습니다. 최고의 것으로 주님을 섬겨도 아깝지 않을 마지막 만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자리에서조차 주님께 진정한 사랑과 섬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먼저 낮아져 종이 됨으로 서로의 발을 씻기며 주님을 닮은 진정한 제자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주께서 그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선생이자 주께서 발을 씻기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마땅히 섬김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최후 만찬의 잔치의 주인이시고, 그 만찬에서 손님으로서 섬김을 받으셨어야 할 주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아쉽고 안타깝게도 그 날의 만찬에 모인 모든 사람들 사이에 누가가 그려놓은 것 같이, “누가 더 크냐"는 다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먼저 섬기신 사랑의 삶을 오랜 세월동안 함께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주님께서 그들의 곁을 떠나가야 할 시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만찬에서 마지막의 당부로 포도주를 주시고 떡을 떼어 주시며 끝까지 사랑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희생의 깊은 세계를 기념하고 묵상하라고 당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 안에 다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위대한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럽게 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주님이 제자들인 우리로 인해서 높임을 받고 있습니까? 여전히 주님과 제자인 우리들의 모습에는 너무나 깊고도 큰 간격이 있습니까? 


우리 안에 주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깊은 의미에 대한 진지한 묵상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깊이 묵상하고, 삶으로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형제를 향한 우리의 사랑은 구체적인 종의 섬김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천국에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요 주인이라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천국의 주인이 되실 수 있었고, 
지금도 천국의 주인이신 것은 종의 모습으로 항상 모든 자들을 섬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