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사순절 묵상

사순절 십자가의 길 16일

즐거운길 2021. 3. 29. 18:01


겟세마네의 기도 / 그리스도와의 동행 (I)

 

마가복음 14 장 32-42 절

 

 

[막 14:32-42]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저희가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 세번째 오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이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오늘은 “그리스도와의 동행”이라는 제목으로 겟세마네의 기도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주님은 이곳에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 처절한 기도의 씨름을 복음서의 저자들은 기록했습니다. 겟세마네는 감람산 안에 있었는데, 주님께서 이곳에 들어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이 겟세마네의 기도는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너무나 중요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가장 마지막에 기록된 요한복음에는 이 너무나 중요한 기도가 빠져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요한복음 13 장부터 16 장까지는 최후의 만찬과 고별 설교가 기록되어 있고, 17 장에는 남겨질 제자들과 미래의 교회들에 대한 고별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고, 18 장부터 본격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이 시작됩니다. 

 

 

 

왜 요한은 요한복음 13 장과 18 장 사이에 다른 복음서 저자들은 모두 기록한 겟세마네의 기도를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십자가의 길에 있어서 요한은 무엇을 주목하고 있었습니까? 그것은 요한복음 13 장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거운 십자가, 고난의 십자가는 이미 요한복음 13 장 속에서 결심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겟세마네의 기도를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기도 이전에 이미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 안에 큰 결단이 있었습니다. 다른 공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의 기도를 통해서 “일어나 함께 가자”(마 26:46; 막 14:42)라고 하시며 십자가를 지실 것을 결의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요한은 13 장의 최후의 만찬에서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의하셨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 13:30-32]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31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유다가 주님을 팔 생각을 하고 나갔고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이제 십자가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회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십자가가 영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극의 자리에서 더 큰 사랑의 역사가 드러날 수 있음을 굳게 붙드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의 그 길을 가시기로 결의하셨습니다. 

 

 

[요 13:36-38]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37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48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주께서 가시는 그 십자가의 길을 자신이 따라올 수 없다는 말씀에,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4 장 27-31 절’에도 동일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 14:27-3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는 말씀은 스가랴서 13 장 7 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이었습니다. 목자를 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자들의 목자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공격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임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죽임을 당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단호한 결의로 어떠한 상황이 올지라도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어디로 가셨습니까? 겟세마네였습니다. 그것이 오늘 ‘마가복음 14 장 32 절’부터의 본문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겟세마네의 기도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유를 깊이 생각해봅시다. 


이것을 기록하지 않은 분명한 의도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3 장을 보면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셨습니다. 벌써 죽음을 예상하시고 떡과 포도주를 내 살과 피라고 하시면서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요한복음 13 장부터 보면, 수난의 십자가의 길에 대한 흔들림 없는 결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마태복음 26 장 26-29 절’을 봅시다. 
[마 26:26-29]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마가복음 14 장 22-26 절’에도 동일하게 기록이 있습니다. 
[막 14:22-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가니라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주셨습니다. 이 상황 속에는 주님 안에 매우 심각한 세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제자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감람산으로 갔습니다. 주님께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던 겟세마네 동산으로 제자들은 ‘노래를 부르며’ 들어간 것입니다. 만찬이 끝난 그 밤에, 주님을
팔 제자가 나간 그 밤입니다. 그 밤이 지나면 어떻습니까? 수난의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안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제자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마 26:30]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막 14:26]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가니라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성전은 예루살렘의 매우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 동산에 들어가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요 18: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기드론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시내, 그곳을 지나 동산으로 들어갈 때, 제자들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요? 우리가 이 부분을 바로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요한은 ‘13 장 1 절’에서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유월절을 앞두고 주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포도주와 떡으로 제자들에게 유월절의 깊은 의미, 십자가의 깊은 의미를 가르치셨습니다. 유월절은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자들에게 죽음의 신이 넘어갔던 것을 기념해서 지켰던 유대인들의 절기였습니다. 이 유월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당시에 약 이백만 명이 모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한 가족에 한 명씩 양을 잡아도 약 20 만 마리의 양을 죽였을 것입니다. 그 피를 성전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매우 높은 곳에 있었던 성전에서 뿌려진 그 피는 기드론 골짜기의 시내로 흘러 내렸습니다. 그러면 시내가 피의 강이 되었습니다.  

 


물은 없고 온통 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물이 다 피로 범벅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 피를 보시면서 죽음의 깊은 의미를 묵상하셨을 것입니다. 피로 흥건히 흐르는 눈물과 고통의 골짜기, 붉은 골짜기를 지나 동산으로 들어가시면서 속죄양들의 죽음에 대해서, 당신의 죽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가슴 속에 깊이 새기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시내를 노래를 부르며 건너갔습니다. 제자들은 수난의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길은 어떤 길이었습니까? 제자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주님의 수난의 길은 어떤 길이었습니까? 
고독한 길이었습니다. 홀로 가셨던 길이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