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사순절 묵상

사순절 십자가의 길 19일

즐거운길 2021. 3. 29. 21:00

 

겟세마네의 기도 / 그리스도와의 동행 (IV)

 

 

마가복음 14 장 32-42 절

 

[막 14:35-36]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겟세마네 기도란 무엇입니까? 이 겟세마네 기도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겟세마네의 기도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십자가는 피해갈 수 있는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 길을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겟세마네의 기도를 읽기 싫을 수 있습니다. “왜 주께서 한 때 마음이 흔들리셨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이 영광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시험을 받지 않는 이가 없고 흔들리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눈물로 가지 않는 길이 없습니다. 떨림이 없고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도 그러했습니다. 겟세마네 기도에서의 주님의 모습이 얼마나 우리의 신앙에 위로가 됩니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시고 고민하시고 통곡하셨던 주님이셨지만,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아뢰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자신의 연약함과 두려움과 떨림과 놀람과 슬픔과 고통과 눈물과 통곡을 복종시키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약해질 때, 두려움과 떨림이 있을 때 도망가기 쉽습니다. 십자가를 외면하기 쉽습니다. 주님을 버리기 쉽습니다. 마가도 도망갔습니다. 홑이불을 던지고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갔습니다. 그가 왜 이것을 써놓았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못난 사람이었지만, 주께서는 조금의 흔들림 없이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분도 나와 같이 심히 연약한 분이셨지만 끝내 승리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거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도 우리 안에 많은 흔들림이 있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놀람도 있고 두려움도 있고, 눈물과 통곡, 고통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걸어가신 길을 기억하십시오. 그 길은 어떤 길입니까? 홀로 기도로 하나님 앞에 서셨던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께서 하신 기도를 기억하십시오.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셨던 이 기도보다 아름답고 위대하고 인간적이며 영광스러운 기도가 없습니다. 주께서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은 어떤 것입니까? 그 길은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할 수 있다면 이 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당신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 대로 가신 길이었습니다. 이것이 정말 위대한 세계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상징은 너무나 위대합니다. 어느 종교의 상징을 보면, 사람이 살이 쪄서 배가 튀어나와 있고 온 몸에 윤기가 흐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상징은 초췌한 모습으로 가시관을 쓰신 예수입니다. 주님에게 “아버지시여, 이 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라고 하셨던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33 살에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것, 이것보다 고통스런 비극이 없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형은 소름이 끼치도록 끔찍한 형벌입니다.  비참한 죽음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여 이것을 지나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33 살에 그러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하실 만하면 이 쓴 잔을 지나가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매우 인간적입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쉽게 이길 수 있는 것처럼, 쉽게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심한 눈물과 통곡으로 간구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입니다. 


우리가 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도 십자가 앞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절망하기 쉽고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모습을 묵상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2 장에서 바울은 예수님에 대해서 자기를 비우시고 자기를 낮추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했습니다.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에게는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죽음의 순간에 놓이시기까지, 죽음이 다가올 때까지 복종하셨던 길이 있었습니다.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어둠의 세력과 대결하시면서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복종입니다. 주님은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아바 아버지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바는 아람어입니다. 그리고 “아바 아버지여”라는 말은 “나의 아버지여”라는 말입니다.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기도를 깊이 들여다봅시다. 먼저 “모든 일이 가능하신 아버지여”라는 기도 안에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절대 신뢰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이 길로 가게 하시는 것은, 아들을 이 길로 가게 하시는 것은 뜻이 있을 터이니 제가 그 뜻에 순종하게 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아버지라는 말 속에 들어 있는 깊은 세계를 묵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사랑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을 앞둔 어둠과 절망의 와중에서, 죽음의 순간까지 순종의 모습을 드러내신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의 가장 큰 위기는 어디서 옵니까? “아바 아버지여”라는 이 한 마디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아버지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릴 때 신앙의 위기가 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이시오니, 아들을 이 길로 걷게 하시는 것은 가장 선하신 뜻이 있는 것임을 믿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주님, 이것이 험한 십자가를 달게 지시고 끝까지 가실 수 있었던 힘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절대 믿음, 사랑’을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은 “아바 아버지, 나의 아버지, 사랑의 아버지.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이 고난의 길로 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 알 수 없사오나, 당신의 사랑의 뜻을 따라서 행하실 일인 줄 믿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죽음의 깊은 의미, 그것이 무엇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그것에 대해 “아바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아버지, 모든 것이 다 아버지 안에서는 가능한 것이온데, 당신의 뜻이라면 옮길 수 있을 터인데, 당신의 뜻이라면 이 십자가를 내게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 그것이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피하지 않으시고 도망하지 않으시고 다른 길로 가지 아니하시고 십자가 길을 갈 수 있는 힘의 근원이었습니다.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당신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의지와 하나님 의지가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얼마나 자주 부딪힙니까? 우리가 때때로 무엇인가를 결단해야 할 때,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 일을 해야 할 때 나의 감정과 뜻과 의지와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얼마나 자주 부딪힙니까? 그런데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 우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 세계에 대해 지금 마가는 깊이 그리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이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쉽게 가기를 원합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그 길을 원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붙들어야 될 것, 우리가 잊어버리지 않아야 될 것은 무엇입니까?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부딪힐 때, 그 뜻이 죽음으로 다가올 때도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던 그 복종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전능의 아버지, 사랑의 아버지, 아바 아버지, 당신이 이 길을 가게 하심은,  사랑하는 아들로 하여금 이 길을 가게 하심은 당신의 뜻이 있으실 텐데, 제가 다 알 수 없지만 그 길로 가겠나이다.”라는 기도 속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