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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십자가의 길 20일

즐거운길 2021. 3. 29. 22:10

 

겟세마네의 기도 / 그리스도와의 동행 (V)

마가복음 14 장 32-42 절

 

 

[막 14:37-40]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저희가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그런데 주님께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는 권고에도 너무나 쉽게 베드로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주께서 죽음의 길을 가시는 때까지 잠들 수 있습니까?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잠들 수 있습니까? 본문의 말씀은 지금 그 물음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막 14:41-42] 

세 번째 오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이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이 말씀 속에서 빼놓을 수 없이 붙들고 가야 할 깊은 세계는 무엇입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그리고 십자가의 길은 고독한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홀로 가신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고, 사랑하는 제자들마저도 사정을 알지 못해 무거운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하지 못했던, 홀로 씨름해야 했던 자리였습니다. 항상 그리스도의 고독에 대해서 기억하십시오. 우리 안에도 이런 세계 있습니까? 나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부딪히고, 아무도 나의 십자가, 놀람과 슬픔, 통곡과 눈물, 고통을 알지 못해 홀로 버려진 것 같은 고독함 가운데 있습니까? 마태와 마가, 누가가 공통적으로 기록해서 남기며 우리가 읽길 바라고 도움이 되기를 원했던 세계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극한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절대 믿음과 순종으로 승리하셨던 겟세마네의 기도를 항상 묵상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고독하게 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우리가 기억해야겠습니다.

 

 

 

앞에 31 절에서, 우리는 베드로의 굳건한 결의를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막 14:31).” 베드로는 이렇게 큰 결심과 결단을 하고서도 한 시 동안도 깨어있지 못했습니다. 우리 안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런 큰 결심이 이토록 쉽게 변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모습을 대비해서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앞에 선 예수님과 베드로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베드로는 처음에는 매우 힘차고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러나 비겁한 모습으로 변해 갔습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심히 통곡하지만, “일어나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시며, 일어나신 후에 죽음의 십자가를 피해 가지 않으시고 십자가가 영광임을 굳게 믿으시고 그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셨습니다. 이 두 모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봅시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인간적으로 자신만만합니까? 그러나 그런 모습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약한 것입니까? 
그러나 인간적인 허약한 모습이라도 할지라도 삶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당신의 삶이 하나님의 전적인 통치와 주권 아래 있음을 믿었던 그리스도의 삶 속에서 얼마나 강한 것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의 역설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자신만만하고 완벽하고 하나의 결함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볼 때 오히려 불안합니다. 자기를 의뢰하고 인간적인 강함을 드러내는 사람보다, 약해 보이는 자 안에 진정한 강함이 있습니다.  


주님에게서는 인간적인 약함을 볼 수 있습니다. 심히 울며 통곡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일어섰을 때, 그 어떤 것도 꺾을 수 없는 강렬한 힘을 드러내셨습니다. 강함 속의 약함, 약함 속의 강함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1 장에서 두 아들의 비유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간다 하면서 가지 않는, 그리고 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간 두 아들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대비하신 것입니다. 신앙의 길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안에 약함이 있고, 어리석음이 있고, 부족함이 있고, 허물이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믿음은 항상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입니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능합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삶을 닮아서 살아갔습니다. 그의 지식과 능력, 탁월함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들어가서 전도할 때를 보면, “내가 심히 두려워 떨었다.”고 했습니다. (고전 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바울은 인간적으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 안에서 너무나도 강한 바울의 모습을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능력으로 바울은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교의 일선에 나아갑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과 강함을 먼저 내세울 때 베드로 같은 참담하고 비참한 신앙의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주께서 베드로의 그런 모습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네가 돌이킨 많은 이를 고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우리 안에 있는, 베드로 안에 있는 허약한 신앙의 모습을 주께서는 이미 보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자랑하고 있는 인간적인 강함, 자신을 의뢰하는 그 강함이 얼마나 허망한 것입니까? 그것은 무너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강함이 약함이라는 것, 이것이 역설입니다. 예수님은 강한 베드로를 보고 “네가 무너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네가 넘어지나 다시 일어나 많은 사람을 고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습니다. 잘못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있지 않을 때 흔들리고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넘어졌다고 할지라도 주께서 이미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아십니다. 그래서 “네가 넘어졌다 할지라도 다시 일어나 많은 이를 고치고 가르치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신앙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고난 주간을 맞아 우리가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다시 보면서 가고 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깨달아야겠습니까? 주님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 신뢰가 있습니다. 믿음은 전적 신뢰입니다. 섭리는 영어로 프로비던스 Providence 인데, 이것은 라틴어 프로비덴시아 providentia (pro ‘미리, 이미’ + videre ‘보다, 비디오’)에서 왔습니다. 비디오를 찍듯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찍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비쥬얼(visual)하게 하나님께서 다 있게 하시고, 그것을 따라서 우리를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성,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신뢰 안에서, 그분에게 우리의 삶을 맡기는 삶, 그 안에서 모든 불안이 사라집니다. 


그것이 주님 안에 있는 세계였습니다. 주님은 믿음 안에서 굳게 일어서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서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의 십자가의 길이 말할 수 없는 고난과 눈물과 고통의 길이라 할지라도 주께서는 한 치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이 길을 가고 있습니까? 주께서 걸어가신 모습과 같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베드로와 같은 모습입니까? 베드로는 결국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부인하니 곧 닭이 울었습니다. 
넘어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쓰라린 일입니다. 베드로에게 긴 밤이 지났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리고 기억하기도 싫은 그 밤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벽이 왔습니다. 성경을 보면 굉장히 위대합니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주님의 수제자, 교회의 수장입니다. 그런데 그의 약함과 넘어짐을 숨기지 않고 기록했습니다. 이 위대한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모습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갔어야 할 길이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증거자의 증언이 필요했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주님께 너무나 고독한 길이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주께서는 홀로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길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가야 했다”는 것이 사랑의 제자 요한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그에게는 “같이 갔어야 했는데 주께서 홀로 그 짐을 지셨구나…”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홀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주님의 길이 되지 않도록, 이제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주님의 고독을 보았고, 주님은 너무나 고독한 길 임에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십자가의 길로 전진해 가셨음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보며 우리가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갈 때에, 그 길이 고독한 길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고독한 길을 주님처럼 끝까지 잘 이기고 가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끝에는 부활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